무슨 실에 10만 원이나 써?
10만 원이면 실을 양껏 살 수는 없다. 올 가을이 이제 막 찾아올 무렵 하나밖에 없는 뜨개 친구와 뜨개인의 성지 동대문 종합상가를 찾았다. 패브릭 실이 아닌, 인도에서 넘어온 귀한 실크 실을 보러 간 만큼, 10만 원만 쓰기로 다짐하고 갔지만, 예산은 항상 초과하는 법. 13만 원가량을 순식간에 쓰고 나서야 현생으로 돌아왔다.
공이 천장에 달려있는 소요화원
저 많은 색을 보고 원하는 색을 딱딱 골라낼 안목이 나는 없다. 부쩍 도안 없이 마음 가는 대로 뜨는데 재미를 느끼고 있어서, 마음 같아선 가게를 갖고 싶었다. 등 뒤에 저 실만 있다면 못 만들게 없을 것 같았지만, 나의 예산은 10만 원. 애매한 배색을 고르자니 눈을 못 믿겠고, 무채색을 사자니, 실크의 맛을 못 살릴 것 같았다. 여름 끝물에 들고 다닐 파란색을 골랐다가, 가을에 어울리는 짙은 노란 계열을 내려두고,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쨍한 보라색으로 결정!
"소요화원”의 실을 빨간색처럼 똬리가 틀어져 있다.
저렇게 똬리처럼 꼬여 있는 실을 하나씩 푼다. 요령 없이 기대만 있다. 처음에 똬리를 해체할 때는 잡히는 대로 다 펼쳐 놓았다. 똬리를 동그라미 실로 만드는 데 걸린 시간 각 4시간, 총 2 타래가 들어갔으니, 8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. 가위은 안된다며 다독이면서 했다. 동그라미가 될 것 만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끝이 난다. 실 구매는 7월 2일 / 동그라미 실타래가 된 건 7월 8일 낮이니, 만 5일 정도 실을 잡았다가, 놓았다를 반복했다. 작업물이 나온 것도 아니었는데, 실타래만 보고도 한 동안은 행복했다.
똬리가 동그라미가 된 것 만으로 이미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지만, 열심히 푼 시간이 이 동그라미를 위한 것만 은 아니어서 일단 사슬을 하나 만든다. 자립할 수 있는 동그라미 가방을 만들고 싶었다. 동그라미 바닥을 좁게 만들어서 올리자니, 바닥이 늘어졌고, 실이 계속 부족했다. 한길 긴 뜨기 바닥으로 5 둘레, 짧은 뜨기 가방 5 둘레로 몇 번 수정하다가 동그라미 가방은 포기했다.